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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율법은 사랑이다>

 

1.사랑의 의무

흔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이는 사랑을 실천하므로 누적된 포인트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님은 나의 계명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라고 해석을 덧붙였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사랑하는데서 출발한다. 이는 예수님이 먼저 사랑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입은 사람은 사랑을 실천할 의무가 생긴다.

 

사랑하되 예수님 수준으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사랑을 받은자의 반응이라고 하는거시 옳다. 사랑을 가용하기 보다는 사랑을 받았다면 사랑을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받았기에 사랑의 의무가 생긴 것이다. 그것이 계명이고 율법이다.

 

2.율법은 본래 사랑하라는 명령

율법에 대한 오해가 많다. 행위의 법이라는 것, 틀린 말이다. 율법은 오로지 은혜를 말한다. 은혜에서 출발하고 은혜로 귀결된다.

 

예수님의 계명은 오직 하나, 사랑이다.

본래 율법은 사랑이다. “안식일을 일하지 말라는 계명은 집안에 있는 노예에게 하루를 쉬게 하라는 사랑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은 죄지은 약자에게 과도한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사랑이다. 이처럼 율법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여! 너 자신보다 약한 자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명령이다.

 

하지만 때로 율법은 약자를 정죄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자기 종교적 의를 과시하는 수단이 된다. 참된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출발하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이웃 사랑에 대한 의무감을 느낄 때 아름답다. 기독교는 하나님 사랑에서 출발하고 사람 사랑으로 귀결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신앙을 말할 수 없다. 신앙의 이름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신앙의 이름으로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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