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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비춰지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당당하게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낼 수 있는 현실인가?

아니면...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하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기독교인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하는가?




 

미디어의 발전으로 

많은 기독교 케이블 TV들이 생겼다

겉으로 본다면 

좋은 일이라 여겨지지만 

그 창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기독교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기독교는 코미디언들의 우스게 희화의 

소재거리가 된지 오래이다.

코미디 소재로 활용되는 독특한 어투


기독교에 선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분위기...

이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본적이 없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일뿐이다.



기독교티비에서 송출되는 

설교자들의 모습

솔질히 부끄럽다

이런 장면은 분명히 기독교인들만.. 

우리끼리만 보아야 할 내용인데

일반인들에게 노출되어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거부감은 날로 심각해진다.

오늘의 기독교를 새롭게 정의내리자면

무례한 기독교’ 

세상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을까?

 

201474일 

한국의 모 기독교 선교단체 소속 청년 3명이

인도의 불교 성지인 마하보디 사원 경내에 들어가

찬송가를 부르며 선교 행위를 했다.

소위 땅 밟기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2007년 부산 벡스코에서 기독교계가 연

부산에서 다시 1907(평양 대부흥의 해)’ 집회에서는

부산의 94개 사찰이 무너지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는 종교전쟁을 선포하는 수준이다.

 

2010년 서울 봉은사에서 땅 밟기사건,

같은 해에 모 목사가 조계사 경내에서 소란,

2012년엔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불교 경전을 찢고 

불화를 훼손한 뒤,

방뇨까지 한 목사,


무례하고 부끄러운 기독교


한국교회는 이러한 행위에대해서 

세상에 사과하거나

이들의행위를 

결고 비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모 지역에 극동방송 설립 추진하던

대형교회 목사의 기도 제목은

팔공산 갓바위가 무너지고

그 위에 극동방송 송신탑이 서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다.

 


아직도 십자군시대를 사는 

기독교인들


이런 현실을 두고 언론은 

무례한 기독교라는 표현을 썻다.

종교 전쟁적 사고, 십자군식전도에 빠져있다.

하지만 유럽역사에서

가장 부도덕하고 잘못된 전쟁 중에 하나는 

십자군 전쟁이었다.

 

지금의 한국기독교는 

이원론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홀로 섭리하시는 절대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하나님과 악의 세력의 각축장이라고 

하나님을 폄하하고 있다.

 

선악대립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교회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각을 표현한 것이다.

 

세상을 대적하고 경계하기 전에

세상은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신’ 

세상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경계하고 대적해야 할 세상과

이처럼 사랑하신 세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무례한 기독교

친절한 기독교


친절한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어떤 영성보다도 우선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신앙이전에 상식이 중요하다.

무슨 소리하느냐고? 신앙이 중요하지 이단인가?

아니다.

 

상식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생각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이를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타협하고 정체성을 부정하라는 말은 아니다.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근거로 교훈하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상식이고 도덕이다.

성경에만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말

윤리책에도 있고, 논어에도 있고 

불경에도 있는 말이다.

 

누구나 하는 말이고, 할 수 있는 말이다.

단지 다른 것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유에 있다.

 


 

무례한 기독교


기독교인인 나에게는 남을 위한 배려가 없다.

오래전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 무료 급식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내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밥을 주기 전에 노숙자들을 모아놓고 

커다란 현수막까지 걸어놓고 행인들이 오가는 

그 광장에서 예배를 진행하는 것이다.

 

흔히 역 앞에서 목격되는 예수천당 불신지옥!

그래서 한 영혼을 얻는다 한들

그로 인해서 실족하는 잃어버린 

수 많은 영혼들을 어쩔 것인가?


 

 

나는 과거에 불신자라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잃은 양 찾기도 하자고 외쳤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 바라보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다.

내가 잃은 양이란 말인가?”

내가 비그리스도인일 뿐인데 

왜 나를 자기들 입장에서 불신자라고 

매도하는거지?”라는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부끄러운 기독교

 

타종교인을 존중해야 한다.

기독교 외에 진리가 있고,

구원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인격체가 믿는 신념으로

 품고 있는

종교라면 일단은

그 인격을 존중해서 인정을 해줘야

대화가 될 것이고

감동을 주고 전도할 기회도 

생기지 않겠는가는 말이다.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말이다.

 

그래야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존경받는 교회가 될 수 있고

영향을 끼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성이라는 말이나

전도를 말하거나

선교를 운운하기 이전에

기독교인들의 상식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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