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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는가?


성경은 그냥 좋은 윤리가 아니다. 산상수훈은 특히나 너무나 비현실적인 가르침이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산상수훈의 내용이 너무 높은 수준의 삶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를 이해하려는 몇가지 시도가 있고 산숭수훈 해석에 대해서 몇가지의 견해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예수와 바울의 구원관은 다르다는 해석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견해는 행위구원론적인 율법주의이지만, 신약의 사도 특히 사도바울의 구원관은 은혜구원론이다 그래서 예수와 사도들의 구원관은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견해


(2) 이 가르침은 특별한 사람, 즉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이다는 주장

일반신자에게 요구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한정되는 또는 지도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견해


(3) 미래에 이 세상현실윤리가 아니라 앞으로 미래에 완성될 천국에서의 이상저인 윤리, 즉 이 내용은 천국에서의 삶을 뜻한다는 보는 견해도 있다.



(4)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도록 유도함이다

산상수훈의 가르침 내용은 절대불가능한 가르침인데 이를 통하여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견해이다


(5) 삶의 목표와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산상수훈은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와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견해들에 대한 평가


예수님과 사도바울의 가르침이 다르다는 주장은 성경을 수용하는 자로서는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견해이다.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자로서는 서로 모순된다고 하는 결론은 어불성설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르치는 통일된 주장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2)번의 주장은 5장1절의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는 부분을 ㅈ[시하면서 이 설교의 대상은  제자가들이라는 견해이다.  하지만 산상수훈의 대상이 반드시 제자에게만 국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산상수훈이 마지막 부부인 마태복음 7장 28절에는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라고 지적했고, 8장 1절에는 “예수가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라고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3)번의 견해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이 내용이 현실에서 당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가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핍박을 예고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 답을 내령 할까? 가장 합리적인 이해는 (4)번과 (5)번의 조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상수훈의 아이러니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를 우리는 산상수훈이라고 하는데, 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구원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산상수훈이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면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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