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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은 흑인의 조상이며 

흑인은 저주받은 종족인가?



노아의 저주는 정당한가?

그가 취한행동은 옳은 행동인가?

아니다! 성경은 그런 억지를 말하지 않는다



함은 흑인의 조상인가?

또 한 가지, 노아의 아들들과 관련한 성경 해석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른바 셈, , 야벳의 후손에 관한 내용이다

거의 정설처럼 여겨지는 노아의 아들들에 관한 해석 가운데 

하나는 노아의 아들, 셈과 함, 야벳은 

오늘날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의 조상이라는 해석이다.

 


, 셈은 황인종의 조상이 되었고

함은 흑인의 조상이 되었으며, 야벳은 백인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셈은 종교의 복을, 야벳은 물질의 복을 받았으나

함의 후손은 노아의 저주로 인해 노예가 되는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해, 장세훈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신학)는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본문과 무관한 성경해석을 지향하고 있다이는 성경 본문의 절대적 권위와 그 가치를 역설하는 개혁교회에서 철저히 배제돼야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함의 저주에 관해서는 

함의 범죄로 인한 정복과 종살이를 암시하고 있긴 하지만 함의 저주를 아프리카인들에게 적용시키는 해석은 본문의 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오히려 이와 같은 해석은 기독교 국가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부릴 당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사용했다

고 주장한다.

 


함의 입장에서 볼 때, 술 취한 아버지로 인한 

한 번의 실수와 경솔함이 자손대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지적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함의 후손이 흑인이라는 해석은 전적으로 서양인이 자기들 백인의 중심에서 해석한 해석이다. 식민제국주의시대, 서구 열강들은 남미 식민지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하여 흑인 노예들을 잡아 보내는 일을 자행하였다. 이에 일부 서구 신학자들은 노예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인용했다. ‘흑인들을 노예로 사용하는 것은 성경 예언의 성취이다. 노예무역은 하나님의 뜻이다라 주장하기에 이른다. 함이 흑인의 조상이라는 주장은 흑인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성직자들이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인용하고 해석한 구절이었다.“

 


5.예수님은 백인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묘사한 많은 그림이나 영상을 보아왔다

그렇게 보아온 그림들이 우리들에게 서양인 외모를 가진 

예수님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에 담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수염을 기른 

서양인의 모습일 것이다

예수님이 검은 머리에 키가 작은 동양인의 외모를 

가졌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한때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예수를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을 

서양 사회는 용인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한 서양인 중심의 관점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법의학자에 의해서 제시된 재미난 기사가 있다.

리처드 니브라고 하는 전 맨체스터대학 교수는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발굴한 

예수님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3개의 셈족 두개골을 

예수님의 얼굴을 복원하는 데 활용했고 

컴퓨터 단층촬영과 디지털 3D 기법을 활용해 

얼굴의 골격을 재현했다고 한다.

 

셈족 유골 분석을 통해 예수님의 키가 1.5m로 작고 

몸무게는 50kg 정도일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성경에서 바울이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한 점으로 미뤄 예수님은 

긴 머리 모양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당시의 유대인 전통에 따라 수염을 길렀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서양인이 만들어낸 

서양인의 외모를 가진 것이 아니라 외소한 동양인의 외모를 

가졌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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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함, 흑인의 조상, 노예... 라는 이러한 해석은 

서양인 외모를 가진 예수를 만들어낸 서양인들이 서양인의 관점에서,

서양인의 유익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왜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자는 없다.

노아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물론 우리보다 훨씬 더 나은 도덕성을 가진 것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그는 분명 인간이다. 실수할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다

노아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이라는 말이다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필요 없는 인간은 없다.

 


홍수심판에서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던 노아, 그가 실수했다

그리고 분노하여 분별력을 상실한다

분노를 참지 못하여 이성을 잃고 손자 이름을 들먹이며 저주 뱉어냈다.

 

우리가 성자로 아는 노아가 그랬다고 성경이 기록한다

우리가 스스로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노아도 그랬다고 말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소망이 없는 인생이다

그런 인생을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신다

이보다 더 감사하고 은혜로운 복음이 어디 있는가?

 


나는 흠 없고 의로운 성자 노아보다는 우리처럼 실수 할 수 있고

넘어질 가능성을 가진 인간 노아가 더 좋다

성자 노아 앞에서는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지만 

인간 노아를 만나면 힘이 나고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인간적인 노아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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